왜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가?

왜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가?
House sketc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8개의 철학 지도]중 6장에 해당하는 소제목이다.
이 장의 이야기는 보노보노의 질문 "어째서 집에서 살고 계십니까?"에서 시작된다.
보노보노의 친구 너부리는 그에 대답으로 "사니까, 집이다."라는 명료하게 답을 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집은 단순하게 살고 있는, 안락한 곳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의 집은 재산가치이자 사회적 지위를 뜻하기도 한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평가하는 한국사회를 이야기 한다. '사회적 명함' , '평가' , '지위' 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배경소재로 집은 자주 사용된다. 안락하고 편안하고 자신만의 공간이여야 하는 집이 외부적인 압력에 의해 닫힌공간으로서 나갈 수 없는 공포의 공간으로 변한다는 영화 소재는 많이 봤을 것이다. 새로 이사한 집이 알고 보니 귀신이 들린 집이라던가, 놀러간 팬션이 귀신이 있다던가, 등의 이야기 말이다. 

결국 집은 나가기 위해 경유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외부에 은폐되는 사실도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가정 불화, 폭력, 학대등 집은 사적임과 동시에 강력한 차단막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외부로부터 고립되어있으며 독립되어 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 2가지 근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첫번째로는 나 자신의 개인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세상과 연결 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기능을 작용한다. 

타향, 타자화 되면 아무도 나를 상관하지 않고 익명의 상태가 주는 자유로움이 기쁨으로 느껴질수 있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않고 돌아봐주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그저 한 명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취급받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살펴보자. 그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동시에 신에게 미움을 받아, 10년간 고향으로 귀향한 여행자이며 귀환자 이다. 오디세우스는 낯선 곳에서 '칼립소'라는 여인의 사랑을 받아 7년간 머물지만, 결국 그는 낯선 땅에서의 정착을 거부하고 고향으로의 귀환을 택한다.

나의 성장의 진보를 알아봐주고, 그 시간성을 복원 해 주는 곳이 바로 집이며 고향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낙관적인 좋은 국면이 올 때가 있고, 나쁜 국면이 올 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면전환이 계속 반복 되며, 우리는 그 국면을 알아내고, 잘 대비 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는 모든것은 변화하며 고정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달리 변화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다. 변화는 없으며 우리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거나 어디로 떠나거나 하는 이유는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마르틴하이데거도 변화와 복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무한한 변화와 생성앞에서 자기의 근원적인 고향으로는 충동. 여기서 말하는 고향은 개인적으로 '신'이 될 수도, '우주'가 될 수도, '도'가 될 수도 있다. 

기계가 인간의 삶의 노동이라는 부분을 대체, 손으로 만드는 많은 장인들을 대체하며 일을 세분화 시키고 난 뒤, 진정한 삶의 방황을 앓은 개인의 불안한 조건을 '고향상실'이라 표현했다. 

현대사회의 유목민, 고향을 상실하고 억지로 이동하고 있는 이 시대의 해외 진출 노동자들 및 유학생들, 스마트폰이 주는 '이동'의 자유는 디지털 노마드라고 불리는 동시에 그 이동이 실제로는 우리를 고립 및 소멸 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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