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그리는가

인간이 '자기'를 말한다는 것은 타자와 다른 고유한 존재가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모든 역사에서 자기를 고백하는 존재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15세기 말이 되어서야 
'자화상'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1493년, 르네상스 시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 는 20대초반 부터 
오직 자신만을 그린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5년뒤에는 자신의 자화상을 이탈리아
사람처럼 묘사한다.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했던 경험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로부터 또
2년뒤에는 자기 자신을 예수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것 처럼 보이게 그렸다.

이 자화상들은 한 인물안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망록이라고도 할수 있다.


자화상을 한 사람의 일대기이자 자서전이라면 렘브란트(Rem-brandt) 를 빼 놓을 수가없다.
그는 평생 여러 시기에 걸쳐 수십 편의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젊은 시절
의 순수한 모습부터 성공한 중년기의 당당한 모습을 지나, 세월의 풍상을 겪은 노년의 
모습까지, 특히 노년의 렘브란트는 자식과 아내를 잃고 고소까지 당해 비참하게 지낸 세월
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화상은 자신의 기록이자 자기가 생각하는 자아의 이미지.


그 다음은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를 살펴보자, 고흐에게 자화상은 고통의 흔적,
또는 고통을 극복 하려는 반복적인 노력의 흔적으로 보인다. 귀를 자른 반 고흐의 자화상은
공허하게 보이고, 화면을 바라보는 눈빛은 처연하고 안타깝다.  그는 불안정한 정신상태때문에, 
정신병원에 드나들면서도 평생 독특한 색감과 깊이를 담은 2천 여점이 넘는 그림과 드로잉을 남겼다.


다음은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를 보자. 
병약한 체질에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과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평생 공허하고 불안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또한 어두운 그림자속에서 공허하고 불안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형상을 담고 있다. 

자화상은 화가가 보는 이에게 청하는 대화와 같은 것, 사람들은 왜 자화상을 그렸고, 
또 그릴까? 

자화상에는 사실 3가지의 자아가 담겨있다. 하나는 그림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 실제의 나 '
두번째는 ' 거울에 비친 나'이다. 이 거울속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일단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어 있기 때문에 실제 자기의 얼굴과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거울의 나는 사실상
허구의 존재이며, 매개 없이 자기를 대상하지 못하는 투영체일 뿐이다.
'실제의 나'는 실물이 아닌, 빛으로 투영된 '거울속의 나' (허구의 존재)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세번째는 '그림속의 나'이다. 실제의 내가 거울속의 나를 보고 그림으로 옮길 때 일종의 
'해석'이 발생한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기때문에 거울속의 나는 그림으로 옮겨질 때 
해석되고 창조된 완전히 새로운 나로 바뀐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해석된 자아이기 때문에 결코 실제의 나와 그림속의 내가 같은 존재
일 수 없는것이다. 나의 영혼의 흔적이 담겨 있지만 궁극적으로 해석된, 모종의 이미지나
의미가 부여된 새로운 존재 인것이다. 

자화상은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존재들간 의 경쟁과 갈등, 조화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말을 건다. 화가는 자신을 읽어 달라며 적극적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독해 해야하는가,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할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의 자화상을 보며, 그들의 영광,자부심,성취를 읽을 수있고, 또는 고통,불안,공허를 읽을 수있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그림으로 해석된 나는 실제의 나는 감추어 지고 그림의 나
만표면적으로 이미지로 남는 것이다. 그림에서는 웃고있지만, 실제의 나는 울고 있는지는 
결국 알 수없는 것이다.

우리는 화가의 그림을 보고 내면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으로 초대하는 길이지만, 더 이상 화가의 내면으로 들어 갈수 없다. 자화상의 자기고백은 그래서 삶이 영광스러울수록, 혹은 더 고통스러울수록 이 행위가 의미 있을 것. (드러내거나, 숨길수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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